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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서양의 관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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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관상학의 역사

서양 관상학'의 역사는 동양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고대에서부터이다. 관상학의 역사는 그리스 로마시대에서 비롯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관상학』, 테오프라스토스의 『각양각색의 사람들』 갈레노스의 『네 가지 기질설』 능이 대표적이다. 그리스는 관상학을 서양 분명의 일부로 생각하고 연구를 하였다. 히포크라테스는 사람 얼굴 모양과 성격과의 관계 연구를 하였다. 히포크라테스는 사람 얼굴 모양과 성격의 관계 연구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상학』이라는 저서가 있다. 그의 저서는 16세기까지 인상학의 텍스트로 인정을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상학의 원칙을 3가지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첫째, 여러 종류의 동물과 인간을 비교하여 성격의 특성과 외형의 특성을 유추하였다.

둘째, 인종에 따라 사람을 3분하고 성격의 특성 능을 분석하였다.

셋째, 여러 가지 표정을 살피고 분석하여 각 표정이 의미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분석하였다.

 

18세기에는 관상에 성격특성이 나타난다는 인상학이 출현하였다. 이마가 넓으면 영리하고 양 눈 사이가 좁으면 교활하고 뾰족한 턱은 이성적이다 등 다양한 관상으로 보는 성격이 유행하였다. 성격 관상이 점차 두개골 연구로 심화되었다. 사람의 성격, 특성 등이 두개골에 늘어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사람마다 뇌의 구조가 다르고, 뇌를 음악성이 발달한 자, 지배욕이 강한 자, 신중하고 조심성이 큰 자 등으로 구분했다.

 

골상학으로 유명한 '프란츠 갈'이라는 의사가 있었다. 그의 소문이 궁전에까지 퍼져 프로이센 황제궁에 초대받았다. 황제는 군인 복장을 입은 장교를 평하게 하였다. 프란츠 간 그 장교의 두개골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관자놀이가 튀어나온 것에 집중하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장교의 골상에 대하여 공격성이 강하고 폭발성과 파괴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황제는 감탄하였다. 그 장교는 사형수로, 프란츠 갈을 시험하기 위해 황제가 장교로 변장시킨 것이었다. 또한 황제는 그 자리에 있던 귀족의 골상을 보게 하였다. 한참 두개골을 살펴본 프란츠 간 “정신이 맑고 지혜가 뛰어나며 고결한 사람입니다."라고 분석한 결과를 말했다. 그가 바로 유명한 괴테였던 것이었다.

 

관상학에 대한 비판

“관상학은 사람의 외면으로부터 그의 내면을, 그것이 성형이든 심술이든 판정하는 기술이다."라고 칸트는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에서 정의했다. “풋내기 골상학은, 교활한 사람은 주먹만 한 혹이 귀 뒤편에 붙어 있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아내는 그녀 자신이 아니라 남편의 이마에 혹이 달려 있다고까지 할 정도이다.” 또한 “자네는 정직한 사람인 양 처신하지만 사실은 억지로 그러는 척할 뿐 본심은 악한이라는 것이 자네 얼굴에 드러나 있네.” 그런 말을 듣는 순간 적어도 사리에 맞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당장에 세상을 날려버릴 기세로 그의 따귀를 후려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응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것만이 '인간의 현실성은 그의 얼굴에서 드러난다.'는 생각을 학문의 으뜸가는 전제로 내세우는 데 대한 반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이렇게 관상학을 비판했다. 헤겔의 비판이 강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관상학이 폭넓게 퍼져있었음을 알 수 있다. 헤겔의 관상학에 이어 골상학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이어졌다. “어떤 사람에게 '너의 두개골은 이렇게 생겼으므로 너의 내면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곧 두개골이 너라는 인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골상학을 주장하는 골상학자의 뇌를 박살 낼 정도의 타격을 가함으로써 뼈라는 것이 인간에게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하물며 그것이 인간의 실상을 진실로 나타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그 당사자의 지능에 어울릴 정도로 받아들이게 하는 길밖에 없다." “인간의 본질과 운명은 미리 마련되어 있고 얼굴을 관조하는 관상학을 통해 알려지는 행위로 만들어진다. 개인의 본질은 오히려 의지나 행위의 결과 속에 담겨 있게 된다."라며 관상학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골상학으로의 발전과 역사

골상학은 두개골의 크기와 행태 등의 형상으로 인간의 성격, 심리, 특성, 운명 등을 추측하는 학문으로 성상학으로 부르기도 하며, 동양보다는 서양에서 활발하게 연구되어 왔다. 골상학의 창시자인 오스트리아의 의사인 프란츠 요제프 갈 인간의 심리적인 특성을 독립된 여러 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각 부분은 대뇌 표면에 일정하게 배치되어 있다고 보았다. 각 부위에 자리한 심적 기능의 발달 정도에 따라 대뇌와 두개골의 형상과 요철이 결정되고 그를 바탕으로 인간의 성격, 심리, 특성 등을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제자인 요한 슈바르츠하임이 골상학이란 명칭을 붙이고 프란츠 요제프 갈과 공동으로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는 심적 기능을 35가지로 분류하고 대뇌의 각 부위를 배열하였다.

 

골상학은 19세기 후반 유럽 전역에 걸쳐서 유행하고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셜록 홈스』도 골상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주인공 홈즈는 수시로 골상학을 활용하여 범인을 추측하거나 잡는다. 푸른 카벌에서 홈즈는 큰 모자를 발견하고는 '모자가 큰 것을 보니 두개골이 크군. 그렇다면 꽤나 영리하겠어'라고 설명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외에 두개골의 모양으로 인종을 맞히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도 캘빈 캔디(레오나르노 디카프리오)가 사람의 두개골을 들고 흑인 노예의 특징을 설명한다. 『셜록 홈스』나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는 골상학으로 사람을 분석하면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없이 외치는 장면도 나온다.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 프란츠 2세의 명령으로 골상학이 금지된다. 이에 프란츠 요제프 갈과 요한 슈바르츠하임 두 사람은 유럽 각지를 돌며 골상학의 타당성을 호소하고 다닌다. 영국의 인류학자 이래즈머스 다윈의 외손자,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란시스 골턴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학생들의 머리 성장에 관하여, 1888』를 발표하는데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세 분류를 하고 분석하였다. 이 실험에서 성적이 높은 학생들의 평균 머리 크기가 성적이 낮은 학생들의 평균 머리 크기보다 약간 크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골턴의 연구는 현대에 와서 MRI 등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뇌의 부피와 IQ와의 상관관계로 이어졌으며, 평균적으로 뇌가 크면 IQ가 높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IQ를 측정하는데 거의 무의미하며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대략 R = 0.33 정도로 신뢰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 외에 코르비니안 브로트만은 숫자로 피질 구역을 나타내는 브로드만 지도를 만들었고 와일더 펜필드는 호분쿨루스 –운동뇌로, 감각뇌도를 만들었다. 헤겔 『정신현상학』에 나타난 골상학 헤겔은 독일 관념론 철학을 완성시킨 근세의 체계적 형이상학자이다. 헤겔은 관상학이 사람의 외면으로부터 그의 내면을 판정하려는 것을 가혹하게 비판했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인간의 본질과 운명은 얼굴을 관찰하는 관상학, 골상학에 따라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헤겔이 골상학을 비판하며 내놓은 결론은 “인간의 운명은 관상. 골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지나 행위를 통해 개척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헤겔의 관상학과 골상학의 비판

관상학은 외적인 얼굴의 용모나 인상에서 내적인 생각을 담으려는 것인데 헤겔은 얼굴이란 언제라도 벗어던질 수 있는 가면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골상학은 두개골 모양이나 크기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나타난다고 보는데 헤겔은 골상학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두개골과 정신 사이에 대한 법칙도 찾아낼 수 없었으며 정신의 존재란 유동적이며 인간의 자유라고 하였다. “풋내기 골상학은 교활한 사람은 주먹만 한 혹이 귀 뒤편에 붙어 있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아내는 그녀 자신이 아니라 남편의 이마에 혹이 달려 있다고 할 정도이다."라며 골상학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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