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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

이중환의 택리지 속 살기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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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한 《택리지》의 구성

《택리지》는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나온 인문지리서다.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학자들 사이에서도 뛰어난 지리학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은 지리의 이론과 실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책은 이론만 열거하거나, 사실만을 나열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택리지》는 지리와 인간 생활의 상호관계를 과학적 태도로 논하고 있다. 이 책의 중심사상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어디인가를 논하는 데 있다. 살 만한 땅을 '가거지(可居地)'로 표현하는데 여기에는 풍수지리에 관한 견해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또 자연적인 입지 조건, 산수, 교통, 토지의 생산성 등을 세심하게 논하였다. 내용은 사민총론(四民總論) ㆍ팔도총론(八道總論) ㆍ복거총론(卜居總論) 등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민 총론에서는 사 ㆍ농 ㆍ공 ㆍ상의 유래 및 사대부의 역할과 사명을 논하였다. 팔도총론에서는 조선 팔도의 위치와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요약과 함께 지리적 특성과 지역성을 그 지방 출신의 인물과 결부하여 논하였다. 복거총론에서는 풍수설을 많이 원용하여 살기 좋은 곳을 설명하면서 그 입지조건으로 지리ㆍ생리ㆍ인심ㆍ산수 등 4가지를 들었다. 팔도총론이 일종의 지방지라면 복거총론은 인문지리적 총설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근대적 의미의 지리서로서, 한국 근대 지리학 ㆍ사회학 등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중환은 인문지리학의 선구자로서, 실학의 학풍을 세우는 데 이바지하였다.

 

 

 

 

지리(地理): 수구 ㆍ야세 ㆍ산형 ㆍ토색 ㆍ수리 ㆍ조산 ㆍ조수 등이 좋은 곳

 

첫째, 수구(水口)를 보고 잠기어 관쇄(關鎖) 되었는지 살펴라

만약 수구가 이지러지고, 넓고 팅 비어 있으면 사람과 재물이 자연히 흩어지고 없어져 망하게 된다. 비록 부자라 할지라도 다음 세대까지 잇지 못한다. 그러나 산속에서는 잠긴 곳을 얻기 쉬우나, 들 가운데서는 그런 짜임새 있는 곳을 얻기 어럽다. 그러므로 반드시 물을 거슬러 주는 사격(砂格)이 있어야 한다. 높은 산이나 언덕, 바위 등을 가릴 것 없이 힘차게 흐르는 물길을 가로막으면 길하다. 한 겹이라도 좋지만, 세 겹, 다섯 겹으로 감싸지면 더욱 길하다. 이런 곳이라야 굳건하게 오래도록 세대를 이어 나갈 수 있는 터가 된다.

 

 

둘째, 야세(野勢)를 살펴라

마을 안쪽에는 탁 터진 들판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양기를 받고 사는데, 하늘은 곧 양명한 빛이므로 하늘이 작게 보이는 곳은 결코 살 곳이 못 된다. 이런 까닭으로 들이 매우 넓으면 터는 대단히 좋은 곳이 된다. 해와 달과 별들이 찬연히 비치고 항상 바람, 비, 추위, 더위의 기후가 순조롭고 알맞아야 한다. 이런 곳에서 인재가 많이 태어나며 또 이런 곳에서 질병도 적다. 가장 꺼려야 할 곳은 사방의 산이 드높이 솟아서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며, 혹은 북두칠성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양기가 적고 음기가 쉽게 침입하며 잡귀의 소굴이 되기도 한다. 아침저녁으로 산안개가 자주 끼어 풍토병이 생길 수 있는 기후를 이룬다. 사람들이 병을 쉽게 얻는다. 이런 까닭으로 작은 산속에 사는 것은 넓은 들에 사는 것만 못하다. 넓은 들판에나 지막 한 산이 둘러싼 곳은 햇볕이 막히지 않고 수기(水氣)가 멀리 통하기 때문에 길하다. 높은 산 가운데서도 들이 탁 터진 곳이면 역시 좋은 터가 될 수 있다.

 

 

셋째, 산형(山形)을 살펴라

마을 뒤 주산이 수려 ㆍ단정하며 청명하고 아담한 것을 제일로 삼는다. 뒤 산맥은 길게 계속되어 들을 지나고 갑자기 일어나 높고 큰 봉우리를 이루며, 지맥(支脈)은 감싸듯 작은 분지를 만들어 마치 궁성 안에 들어온 것 같으면 최고 길 지다. 다음으로 좋은 곳은 주산의 형세가 자못 온화하고 넉넉하여 마치 큰 겹집이나 높은 궁전 같은 곳이다. 그다음은 사방의 산이 먼 곳에 있어 들이 널찍하고 산맥이 평지로 뻗어 내려 강을 만나 들 터를 이룬 곳이다. 가장 꺼릴 곳은 산맥과 산이 나약하고 둔하며, 생기가 없거나 혹은 무너지고 기울어져서 길기(吉氣)가 적은 곳이다. 무릇 땅에서 생기와 길기가 없으면 인재가 나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산세를 가리지 않을 수 없다.

 

 

넷째, 토색(土色)을 살펴라

무릇 촌거(村居)에는 물 가운데나 물가는 말할 것도 없이 흙과 모래가 굳고 조밀하면 우물이나 샘물이 맑고 차다. 이와 같은 곳이면 살 만하다. 만약에 흙빛이 붉은 점토, 진흙, 검은 사력(砂礫), 모래와 자갈, 황토 등이면 이는 죽은 흙이다. 그런 땅에서 솟아 나오는 우물이나 샘물에는 반드시 풍토병에 걸리기 쉬운 기질이 있어 살 곳이 못 된다. 따라서 땅이 조밀하고 단단하고 밝은 곳이라야 한다.

 

 

다섯째, 수리(水理)를 살펴라

물이 없는 땅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산은 반드시 물과 짝한 다음이라야 생성의 묘미를 다할 수 있다. 물이 들고나감이 지리에 합당해야만 산천의 정기를 모아 길함이 이루어진다. 수관재록(水管財祿)이라 하였다. 물이 있어야 재산이 생긴다는 뜻이다. 물이 고여 있는 물가에는 부유한 집과 명촌과 번성하는 마을이 많다. 비록 산중이라 하더라도 시냇물이 모여드는 곳이라야 대를 이어 오래도록 살 터가 된다.

 

 

여섯째, 조산(朝山)을 살펴라

마을 전후좌우에 있는 산이 추악한 돌로 되거나, 기울어지거나, 무너지고 떨어져 나가거나, 넘어다보는 규봉이 있거나, 이상스러운 돌과 괴이한 바위가 있으면 기필코 살 곳이 못 된다. 산은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맑고 고와 보이고, 가까이 있으면 밝고 깨끗해 보여서 한번 바라보면 사람들이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산세가 험상궂고 밉살스러우면 불길하다.

 

 

일곱째, 조수(朝水)를 살펴라

물 건너 물을 말하는 것으로 마을 앞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이다. 작은 시내와 개울물이 거슬러 들면 길하다. 큰 내와 강에 이르러서는 결코 거슬러 받들 수가 없다. 대개 큰 강이 거슬러 드는 곳은 집터나 산소 터를 가릴 것이 없이 처음은 비록 홍하나 오래 가면 패망하지 않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들어오는 물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는 물은 반드시 산맥의 방향과 그 음양의 두 기운이 합쳐지면서 꾸불꾸불하게 유유히 흘러들어오는 것이 좋다. 한 줄로 활을 쓴 것처럼 흘러들면 좋지 않다.

 

 

 

 

생리(生利): 먹고사는 일에 종사하며, 재회를 얻을 수 있는 땅

 

의식(衣食)이 충족된 후라야 도덕윤리도 안다

무엇으로 생리를 말하는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벌써 공기를 마시고, 물을 먹고, 옷으로 가리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부득이 먹고 입는 일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위로는 조상과 부모를 받들고, 아래로는 처자와 노비를 거두어야 하므로 부득이 재리(財利)를 경영하여 살림을 넓히지 않을 수 없다. 공자께서도 “풍성한 뒤에 가르친다" 하였다. 어찌 헐벗고 빌어먹으면서 조상의 제사를 받들 수 있으며, 어버이를 잘 섬길 수 있으며, 처자 간에 윤리를 따질 수 있으며, 도덕윤리를 말할 수 있는가? 대개 세상인심이 공명에만 힘쓰고, 실용을 등진 지가 오래되었다. 매양 하기 어려운 일을 억지로 하고자 하는 까닭에 세상 사람들은 남몰래 악한 짓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착한 척한다. 이러므로 먼저 의식의 원천이 되는 일에 힘쓰고, 그 뒤에 예의의 발단이 되는 것을 다스려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인간이 한 세상 살아가고, 또 죽은 이를 보냄에 있어서, 모두가 재화를 구하여 힘입게 되는 것이다.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사람과 물자의 유통이 용이한 곳

재화는 결코 하늘에서 내리거나 땅에서 솟아나지 아니하므로 땅이 비옥한 것이 제일이다. 다음은 배와 수레와 사람과 물자가 몰려들어, 있고 없는 것을 서로 통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땅이 기름지다 “ 함은 오곡이 잘 자라고, 또 면화가 잘 되는 곳을 말한다. 논에 벼 한 말을 심어서 60말(斗)을 추수할 수 있는 곳이 제일 좋은 곳이고, 다음은 40 ㆍ50두를 추수할 수 있는 곳이며, 30두 이하밖에 추수할 수 없는 곳은 토박하여 사람 살기에 어려운 곳이다. 이는 오늘날 생산성 향상과 비유되는 대목이다. 물자를 옮기고 바꾸는 방법은 성인(聖人)의 법이다. 이런 법이 없으면 재화가 생겨날 수 없다. 그러므로 말은 수레만 못 하고, 수레는 배만 못하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들이 적어서 수레가 다니기 불편하다. 온 나라의 상고(商賈)들은 거개가 말 등에 화물을 신고 다닌다. 그러므로 길이 멀면 운반비 때문에 이득이 적게 된다. 그러므로 물화(物貨)를 옮겨가고 바꾸어 이득을 보는 데는 화물과 재산을 배에 싣고 운반하는 것만 못하다. 우리나라는 동서남방이 모두 배가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배로 내왕하는 장사꾼은 반드시 강과 바다가 서로 통하는 곳에서 이익을 주관하였다. 오늘날에는 교통이 사통팔달로 발달한 곳으로 물류의 집산지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유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재화도 생길 수 없다.

 

 

 

인심(人心): 마을 풍속을 말하며, 교육 등 주변 희경이 좋은 곳이다

무엇으로써 인심을 말하는가? 공자께서 '“마을의 풍속이 착하면 아름다운 것이 된다. 아름다운 곳을 가려서 살지 아니하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하였다. 옛날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은 아들을 훌륭하게 가르치고자 함이었다. 살 고장을 찾을 때는 그 착한 풍속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비단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자손에게도 해가 있어서 반드시 좋지 못한 풍속이 스며들 우려가 있다. 그러니 살 곳을 가리는 데 있어, 그 땅의 세상 풍속을 보지 아니하면 안 된다. 가능하면 동색(同色)이 많이 사는 곳을 찾으면 더욱 좋다. 그래야 서로 찾아가 이야기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또한 학문을 닦고 연마할 수도 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을 택하여 문을 닫고 교유를 끊고 살면 안 된다. 비록 농업이나, 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며 홀로 잘 살진 모르겠지만 동색의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것만은 못할 것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교육 등 주변 환경이 좋은 곳이라야 자식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다. 또한 같은 동호인끼리 가깝게 살면 사는 즐거움이 더욱 있다는 뜻이다.

 

 

 

산수(山水): 산과 물은 인간 생활과 정신적 방면에 큰 영향을 준다

 

산이 높지 않아도 수려하고, 물이 크지 않으면서 맑은 곳

무릇 산의 형체는 반드시 수려한 돌로 산봉우리를 이루어야 산도 수려해 보이고 물도 또한 맑다. 대저 높은 산, 급한 물, 험한 골짜기, 급하게 흐르는 여울은 비록 한때 구경할 만한 풍치가 있더라도 절이나 도관(道觀)을 세우기에 마땅하고, 영구히 대를 이어 살 곳을 만들 수 없다. 야읍(野邑)으로서 계산(溪山)과 강산의 풍치가 있으면서도 넓고 명랑하고, 깨끗하면서 아득해야 한다. 산이 높지 않아도 수려하고, 물이 크지 않으면서 맑으며, 비록 기암괴석이 있어도 음산하고 험악한 형상이 없어야 한다. 이러한 곳이라야 영기(靈氣)가 모여 살 만한 곳이다. 이러한 곳은 읍(邑)에 있어서는 이름난 성(城)이 되고, 향(鄕)에 있어서는 이름난 촌(村)이 될 것이다.

 

 

평시나 난세나 모두 오래 살 만한 곳은 냇가가 있는 곳

무릇 바닷가의 삶은 강가에 사는 것만 못하고, 강가의 삶은 시냇가에 사는 것만 못하다. 바닷가는 재화를 통하고 어염을 취할 수 있지만 바람이 많아서 사람의 얼굴이 검기 쉽고, 각기병이나 수종, 풍토병이 많다. 또 샘물이 귀하고, 토지에 염분이 들어 있으며, 탁한 조수가 이르러 운치(韻致)가 거의 없다. 강가에 임하여 정자와 집을 짓는 것은 지리에 어그러짐이 많아서인지 흥망이 무상하다. 오직 계거(溪居)는 평온한 아름다움과 깨끗한 경치가 있고, 또 관개와 경작하는 이익이 있기 때문에 사대부들에게 학문과 수양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계거는 영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야 평시나 난세나 모두 오래 살기에 알맞다.

 

 

아무리 산수가 아름다워도 먹고살 수 있는 땅이 우선

무릇 산수라는 것은 정신을 기쁘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하는 것이다. 삶에 산수가 없으면 사람들이 야비해진다. 그러나 산수가 좋은 곳은 생리가 박한 곳이 많다. 사람들이 자라처럼 살 수 없고, 지렁이처럼 먹지 못하는데 한갓 산수만을 취해서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기름진 땅과 넓은 들과 지리가 아름다운 곳을 택하여 집을 짓는 것만 같지 못하다. 십리 밖이나 혹은 한나절을 걸을 수 있는 거리에다가 명산, 가수(佳水)를 사두어 매양 한 번 생각이 나면 때때로 왕복하여 근심을 잊고, 혹은 유숙했다가 돌아올 수 있다면 이는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후세에 산수를 원하는 자는 이것으로써 본을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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