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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자 아들러 열등감의 표현과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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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콤플렉스의 비극은 자기 비하와 연결된다

 

분노 역시 열등감 콤플렉스의 중요한 행동 표현 양식이다

그렇다면 열등감 콤플렉스를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열등감 콤플렉스는 한 개인이 적절하게 적응하거나 미처 대비할 준비조차 되지 않은 문제에 봉착해 도저히 그 문제를 풀 수 없다는 확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정의로부터 우리는 눈물이 나 사과처럼 분노 역시 열등감 콤플렉스의 주요한 행동 표현 양식임을 알 수 있다.

 

열등감은 언제나 심리적 긴장 상태를 유발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상 행동으로 우월감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월감 추구 행동이 더 이상 문제 해결에 적합한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우월감 추구 행동은 유용한 삶과는 다른 방향을 택한다. 실제 문제는 보류되거나 배제되고, 우리는 자신의 행동반경을 스스로 제한하며, 성공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기보다 실패를 피하는 데 몰두한다. 그 결과 어려움 앞에서 주저하고 정제되며, 심지어 퇴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태도는 광장공포증 환자의 사례에서 자주 관찰된다. 다음과 같은 확신이 이 증상의 표현법이다. '낯선 곳으로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익숙한 환경에 머물러야 해. 인생은 온갖 위험한 일들로 가득 차 있고 그 위험한 일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해야 해.‘ 이런 태도가 계속 유지되면 그 사람은 자신의 방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자기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을 것이다.

 

어려움에 맞서 표현되는 가장 철저한 형태의 퇴보는 자살이다. 자살을 택한 사람은 삶의 모든 문제에 백기를 든 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한 신념을 표현한다. 자살이 언제나 타인에 대한 비난이나 복수라는 점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살도 우월성을 추구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자살을 택한 사람은 항상 자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린다. 마치 이렇게 말하듯이 말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여린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나를 극도로 잔인하게 대했다.”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는 울보가 된다

모든 신경증 환자는 어느 정도 자신의 행동 범위를 축소하고 주변 환경과의 접촉을 제한한다. 그럼으로써 직업 우정 사랑이라는 삶의 3가지 문제와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환경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을 통해 신경증 환자는 자신만의 비좁은 안식처를 만들고 문을 닫아건 다음 외부의 바람과 햇빛, 그리고 신선한 공기와 떨어져 홀로 삶을 살아간다.

 

타인을 지배하는 방식이 '괴롭힘이냐 혹은 짜증이냐'는 그가 지금껏 시험해 온 자신만의 훈련 방식에 달려 있다. 즉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지금까지 시도한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을 선택한다. 가끔 어떤 방법에 만족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목표는 변함없이 그대로다. 즉 그는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그저 우월감의 감정만 얻고 싶어 한다.

 

눈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울한 아이는 울보가 된다. 그리고 이 성장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면 이 울보 아이는 나중에 성인이 되어 우울증 환자로 발전한다. 내가 수력(WATER POWER)이라고 부르는 눈물과 불평은 사람 사이의 협력을 방해하고 타인을 노예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극도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수줍음, 부끄러움 그리고 죄책감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사람들은 표면상으로는 열등감 콤플렉스의 증상을 보인다. 즉 그들은 자신이 약한 존재이며 스스로 돌볼 능력이 없음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 높은 수준의 우월성 목표, 즉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최고가 되겠다는 욕구를 감추고 있다. 반면 자기 자랑에 빠진 아이는 첫눈에 보기에도 우월감 콤플렉스의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그 아이의 말보다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면, 그 아이가 인정하지 않으려는 열등감의 감정을 곧 발견하게 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최대 희생자는 응석받이로 키운 아이들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사실 신경증 환자가 만들어낸 특별한 경우의 비좁은 안식처에 불과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될 사랑의 문제와 맞서기를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사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가 자신의 행동 영역을 가족으로 한정할 때 그의 애정 추구 노력 역시 가족 안에서만 진행된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그는 불안전감 때문에 가장 친밀한 가족 몇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는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주도권을 잡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최대 희생자는 어머니가 응석받이로 키운 아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소망이 언제든지 충족될 권리를 타고났다고 믿도록 교육받았으며, 집을 벗어난 곳에서 자신의 노력을 통해 타인의 애정을 얻을 수 있음을 아예 배우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은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산다. 사랑을 통해 그들이 찾는 것은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의 시중을 들어줄 하인이다. 물론 그들이 가장 안심하는 하인은 어머니다. 우리는 어떤 아이에게서도 손쉽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어 버릇을 망치고 아이가 자신의 관심을 타인으로 확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어머니, 그리고 이런 상황에 무관심하거나 냉담한 아버지만 있으면 된다.

 

 

열등감 콤플렉스는 낮은 수준의 자기 평가로 이어진다

제한적인 활동은 모든 신경증 환자가 보이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말을 더듬는 사람이 말할 때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태도를 알아볼 수 있다. 아직 사회적인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낮은 수준의 자기 평가, 그리고 타인과의 만남을 시험으로 여기는 두려움 등이 사회적 감정과 충돌하고 결국 말을 더듬는 증상으로 이어진다.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 30세 전후까지 직업이 없거나 결혼 문제를 미루는 성인, 동일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 수행하는 강박증 환자, 다음 날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 환자 등은 모두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전을 방해하는 열등감 콤플렉스의 증상을 보인다.

 

자위행위, 발기 부전, 성도착 등은 모두 주저하는 생활양식의 증상으로 이성에 접근할 때 느끼는 무능력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타난다.

 

만약 우리가 무능력함이 왜 그토록 두려운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우월성의 목표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에 대한 답은 오직 각자가 너무 높은 성공의 목표를 정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모든 문화는 열등감의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열등감은 그 자체로는 정상적인 감정이다. 사실 열등감은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한 예로 과학은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절감하고 미래를 예측할 필요를 느낄 때만 크게 융성했다. 말하자면 과학은 인류가 자신의 상황 전체를 개선하고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며, 나아가 세계를 더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물이다. 실제로 인류의 모든 문화는 열등감의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아마 이런 결론을 내릴 것이다. "서로 어울려 살면서 이런 사회 제도를 만들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며, 비를 피하려고 집에 지붕을 만들고,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옷을 걸치고, 좀 더 쉽게 걸어 다니려고 길을 만들다니 인간은 확실히 자신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라고 느낀 모양이군.”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에서 가장 약한 존재다. 우리는 사자나 고릴라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니고, 다른 동물처럼 홀로 생존의 어려움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몇몇 동물들 역시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산다. 그러나 인간은 지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훨씬 다양하면서 깊은 관계의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

 

아이는 특히 약한 존재이므로 오랜 세월 동안 돌봄과 보호를 필요로 한다. 모든 사람은 한때 가장 어리고 약한 아기 시절을 거치고,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환경의 영향력에 전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협력하는 방법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비관적인 생각과 열등감 콤플렉스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열등감, 우리 인생에 활력을 주는 또 다른 원동력이다

가장 협력적인 사람에게조차 삶의 문제는 여전히 버겁다. 자신의 최종적인 우월성 목표에 도달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완벽히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삶은 너무나 짧고, 우리의 육체는 너무 나약하며, 직업 우정 사랑이라는 인생의 3가지 문제는 언제나 더 풍부하고 충실한 해답을 우리에게 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해답을 향해 나아가는 것뿐이며, 결코 우리가 이룬 성과에 만족하며 안주해서는 안 된다, 협력적이든 비협력적이든 우월성을 향한 노력은 어떤 경우라도 계속된다. 그러나 타인과 잘 협력하는 사람의 노력은 희망적이고 공헌적인 경향을 보이며, 우리가 처한 상황을 진정으로 개선하려는 방향을 택한다.

 

삶의 가장 높은 목표를 끝내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한 개인 또는 인류 전체가 더 이상 고난이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고 상상해 본다면, 그 상황에서의 삶은 틀림없이 매우 지루할 것이다. 그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미리 예측되고 계산된다. 내일은 예측된 기회만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며 미래에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우리가 삶에 관심과 흥미를 갖는 이유는 확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확신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더 이상 토론이나 발견은 없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도 결말을 맞을 것이며,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는 2번 되풀이되는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달성할 수 없는 목표에 대한 상상력으로 우리의 삶을 즐겁게 해주는 예술과 종교도 그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용기와 독립심이다

인생이 그렇게 게 소진되지 않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큰 축복이다. 인간의 노력은 지속적이며,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찾거나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타인과 협력하며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든지 있다.

 

그러나 신경증 환자는 출발점부터 이런 가능성의 기회가 막혀 있다. 그들의 해결책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에 상응해 그들의 어려움은 그들에게 너무 크게 다가온다. 우리는 보다 정상적일수록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한층 풍부한 해결책을 마련한다, 그 결과 낯선 어려움에 과감하게 다가서고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타인에게 공헌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뒤에 처져 동료에게 짐이 되지 않고, 특별대우 요구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용기와 독립심으로 무장한 채 앞으로 나아가며 사회적 감정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각 개인이 추구하는 우월성 목표는 개인적이며 독특하다

각 개인이 추구하는 우월성 목표는 그들이 삶에 부여하는 의미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 의미는 언어로 설명하기 힘들다. 의미는 그가 만들어낸 생활양식 속에서 형성되며, 그 자신이 창조한 낯선 멜로디처럼 그의 생활양식 속에서 유유히 흐른다. 각 개인은 우리가 한 번에 정형화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우월성 목표는 모호하게 표현되어 우리는 각 개인이 전달하는 단서에서 이를 추측해야 한다.

 

생활양식을 이해하는 것은 시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과 유사하다. 시인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가 전달하려는 의미는 그가 사용하는 단순한 언어 그 이상이다. 시인이 전달하려는 의미 중 상당 부분은 추측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행간의 뜻을 읽어야 한다. 가장 심오하면서 동시에 가장 정교한 창조물이라 할 수 있는 생활양식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자는 행간의 뜻을 읽듯이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각 개인이 삶에 부여하는 의미는 4~5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수학처럼 논리 정연한 절차가 아니다. 어둠 속을 더듬거리고, 전체가 이해되지 않는 모호한 감정을 견디며, 사소한 단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설명하려고 애쓰는 과정을 통해 그 사람의 삶의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우월성 목표 역시 이와 유사한 암증모색과 추측의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우월성 목표는 지도의 어느 한 지점처럼 고정된 모습으로 표현되지 않으며, 찾기 위해 평생에 걸쳐 노력해야 하는 역동적인 것이다. 그 누구도 완벽하게 제대로 설명할 정도로 자신의 우월성 목표를 잘 알지 못한다. 직업상의 목표 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 이는 우월성을 향한 노력 중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또한 목표가 구체화되었더라도 이 목표를 향한 노력에는 무척 다양한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한 사람이 의사가 되고 싶어 할 때 이는 아주 다양한 것을 의미한다. 그는 내과 전문의 또는 병리학 전문가가 되기를 원할 수 있다. 또한 의사가 되려는 행동을 통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어떤 관심을 갖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그가 동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자신을 얼마나 훈련시키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선에서 자신의 도움 행위를 제한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특정 열등감에 대한 보상으로 의사가 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병원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그가 표현하는 것들로부터 그가 어떤 감정을 보상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우월성 목표가 구체화되면 각 개인의 잠재력은 축소되고 제한된다

우리는 종종 의사들이 어린 시절에 죽음의 문제를 일찍 경험했음을 보게 된다, 죽음은 그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인간 존재의 불안전감의 한 측면이었다. 그들의 형제나 부모가 죽었을 수도 있다. 이후 그들이 삶에서 배우는 훈련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 죽음에 대항해 더 큰 안전감을 얻는 것에 집중된다.

 

또 어떤 사람은 교사를 자신의 구체적인 목표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교사도 서로 얼마나 다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만약 어떤 교사가 사회적 감정이 낮은 수준이라면, 교사가 되어 추구하려는 그의 우월성 목표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보다 약하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과 있을 때만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회적 감정이 높은 수준의 교사는 학생들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하며 진실로 인류 전체의 복지에 공헌하길 원한다. 교사의 능력과 관심이 서로 얼마나 다르며, 또한 말과 행동에서 발견되는 그들의 우월성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단 우월성 목표가 구체화되면, 이 목표에 가장 적합하도록 각 개인의 잠재력이 축소되고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완전한 목표인 원형은 이러한 한계들을 밀고 당겨서, 삶에 부여한 의미와 우월성을 향한 이상적인 노력을 결국 드러낸다.

 

 

우리는 내면의 완전성과 성격의 통일성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각 개인의 표면 아래를 보아야 한다. 구체적인 목표의 한 가지 표현 방법이라 할 수 있는 직업을 변경하는 것처럼 누구나 게 자신의 구체적인 목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면의 일관성과 성격의 통일성/을 찾아야 한다. 이 통일성은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도 고정되어 정해진 모습을 보인다.

 

부등변 삼각형을 서로 다른 위치에 두면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삼각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그 삼각형은 항상 똑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원형도 마찬가지다. 원형의 내용은 어떤 단 하나의 표현으로 고갈되지 않으며, 다양한 형태의 표현에서도 그 원형을 인지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결코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없다. “당신이 이 일 또는 저 일을 한다면 우월성을 향한 당신의 노력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우월성을 향한 노력은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보다 건강하고 보다 정상적일수록 자신의 우월성을 추구하는 과정 중 어느 한쪽에서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보다 많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목표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어느 하나만 고집해 이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바로 신경증의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어떤 특정한 우월성을 추구한다고 너무 쉽게 단정 짓지 말고 대신에 모든 목표에서 공통된 하나의 요소, 즉 신이 되고자 하는 시도를 찾아야 한다.

 

이런 태도를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처럼 되고 싶다.” 많은 철학자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학생들을 신처럼 되도록 훈련하고 교육시키려는 교육자들도 많다. 오랜 종교 지침에서도 신처럼 되고 싶다는 목적이 드러나는데, 사제들은 신처럼 되도록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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